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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서울대·연세대' 보내고 '시한부' 선고받은 청년 가장의 마지막 소원

여동생 두 명을 명문대까지 보내고 자기 인생을 살아보려 했던 남성은 곧바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야 했다.

인사이트OCN '구해줘'


[인사이트] 디지털뉴스팀 = "일본 메밀국수가 유명하다던데, 한 번 먹고 싶다. 그리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보고 싶고, 연애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또..."


8년간 여동생 두 명을 명문대까지 보내고 자기 인생을 살아보려 했던 남성은 곧바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야 했다.


지난해 4월 디시인사이드 헬스 갤러리에 올라왔던 남성 A씨의 사연은, 최근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에 의해 재조명 받았다.


사연에서 A씨는 자신이 사는 것이 '불쌍하다'라고 입을 열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도망간 아버지와 집을 나간지 오래인 어머니. 그 사이에서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여동생 두 명을 8년 동안 홀로 키워냈다.


자퇴할 때 친구들과 선생님이 조금씩 모은 돈 봉투를 받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그. 고맙게도 그 돈으로 반지하 월세 단칸방에 몸을 뉠 수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여동생 둘은 그의 곁에서 잘 따라와 줬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고등학교 중퇴이던 그는 인력사무소에 가서 빌다시피하며 일을 했다. 몸이 너무 아파 매일 밤 눈물을 쏟으며 조용히 잠들어야 했다.


나중에는 그런 A씨를 좋게 봐준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보조로 취직해 짝숫날만 출근하며 5년을 보냈다.


여동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막노동과 주방보조 투잡을 하며 적금을 들기 시작했다. 그가 19살 때의 일이다.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난 왜 19살인데 여동생 둘이나 달려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푸념하며 8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목숨보다 소중한 여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인사이트


큰 여동생은 교내 3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데, 오빠를 생각해 취직을 한다며 수시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A씨는 슬퍼 펑펑 울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동생의 대입을 지원했다. 그렇게 큰 여동생은 수능을 잘 봐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날 두 사람은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이후 공부를 썩 잘하지 않는 둘째를 유명한 학원에 보내기 위해 A씨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그건 중졸인 그가 할 수 있는 노동의 최선이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둘째 여동생이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뒤로 그는 정말 기뻤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나만의 인생'을 살아볼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의 대입을 책임 지던 A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주방보조를 그만두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고졸이라도 되고 싶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1년간 열심히 공부했다.


A씨는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도 잔혹하더라. 췌장암이란다"라고 지금의 상황을 전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인사이트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일도 안 나가고 한탄만 하고 있다는 그는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였다. 동생들 좋은데 시집보내고 행복해하는 거 지켜보기. 조카들 예쁘게 낳으면 만져보고도 싶은데, 못하게 됐다"라고 덤덤히 말했다.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정도 남았다는 그의 상황을 아직 동생들은 모른다.


홀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는, 그간 해보고 싶었지만 동생들을 케어하느라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나열했다.


"100만 원 들고 몰래 집 나가서 여행 한번 해보고 싶다. 일본 메밀국수가 유명하다던데 그거 한번 먹고 싶다. 내가 좋아하거든. 제주도도 가고싶다. 비행기 타보고 싶다. 연애도 해보고 싶다. 이 나이 먹고도 여자 손 한번 못잡아 봤다"


남들이 누리던 이런 작은 일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동생들을 잘 키우고 이제야 해보나 했지만,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JTBC '초콜릿'


죽음이 가까워진게 느껴진다는 그는 4월이라 여동생들이 대학에 다녀 살빠진 자신의 모습을 못 알아볼 것이라며 안도했다.


그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으면 이럴까"라며 "살고 싶다. 내가 봐도 너무 불쌍하잖아. (그래도) 재산 여동생들 줬으니 8년 동안 힘들지만 후회없게 살았다"라고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


A씨의 기구한 사연을 본 누리꾼들은 "차라리 주작이면 좋겠다", "이런 인생도 있다니.. 소설이면 좋겠다", "많이 힘들었겠다. 기운내라", "제발 살아줘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보다 희생적인 인생을 산 A씨의 사연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들이 많다. 동생을 자신보다 아낀 그에게 1년이 지난 지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기를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카카오M '아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