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를 글로벌기업 '갓G'로 일궈낸 구자경 명예회장이 살아생전 남긴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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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LG그룹 2대 회장직을 지낸 구자경 명예회장이 오늘 영원한 잠에 들었다.


14일 고인이 된 구 명예회장은 살아생전 수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평범한 기업이었던 LG가 오늘날의 글로벌기업 '갓G'로 발돋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찬사를 받는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에서 세상 빛을 봤다. 그는 학업에 충실했던 학생이었으며,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사가 됐다.


부산사범학교에서 약 5년간 교사로 지내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구 명예회장은 1950년 부친인 故 구인회 창업회장(LG그룹 창업주)의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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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던 그는 LG그룹의 모회사였던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했다.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선 것이다.


1970년 구 창업회장의 작고 이후 2대 회장에 올랐다. 그때 LG그룹의 전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5년 동안 기업을 이끈 구 명예회장은 작은 나라 한국의 평범한 기업 '럭키금성'을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글로벌기업 'LG전자'로 변모시켰다.


전자에 회사 역량을 쏟은 구 명예회장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핵심기술 확보에 주력했다. 그 덕분에 화학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을 넓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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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명예회장의 리더십은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구 명예회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무리'라는 시각을 완전히 뒤엎으며 재임 기간 동안 전 세계에 약 70개의 연구소를 세웠다.


회사 직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열린 경영을 했던 구 명예회장 덕분에 연구소의 성과는 엄청났다.


그 덕분에 1970년 매출 약 260억원이었던 럭키금성은 1995년 매출 약 30조원의 기업이 됐다. 규모를 약 115배나 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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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구 명예회장은 1995년 1월, 럭키금성의 명칭을 LG로 변경했다. 그리고 아들인 故 구본무 회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존경했던 구 회장은 "오직 사람만이 경쟁력"이라는 말을 실천했다. 그렇게 LG는 매출 160조원을 넘나드는 기업이 됐다.


한편 구 명예회장은 인재 육성과 기술 개발에 늘 천착했다고 한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LG 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천안연암대학·연암공업대학 등을 지원했고 LG 복지재단을 통해 사회 공헌활동을 적극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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