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글로벌 아이돌'로 키운 빅히트 방시혁 대표에 대한 재미난 사실 8

인사이트서울대 졸업식 축사 나선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한국 넘어 글로벌 아이돌 거듭난 방탄소년단의 위엄'방탄소년단의 아버지' 방시혁 대표의 차별화된 전략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7명의 소년이 제대로 일냈다. 한국을 뛰어넘어 글로벌 아이돌로 거듭난 것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지난 19일 발표한 사업 실적에 따르면 2018년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매출액은 2,142억, 영업이익 641억, 당기순이익 502억을 기록해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 132%, 영업이익 97%, 당기순이익 105%가 증가한 수치이다.


창사 이래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나면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코스닥 대표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를 훌쩍 뛰어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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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짧은 기간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단연 전 세계 아이돌로 거듭난 방탄소년단의 활약 덕분이다.


지난 2013년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로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잇따라 히트곡을 내놓으면서 '10대들의 대변인'으로 국내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2개 앨범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아이돌로 거듭났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의 아버지'이자 오늘날의 방탄소년단이 있게 만든 장본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1. 중학교 때 몇몇 친구와 밴드를 결성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공연했다


인사이트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밴드활동을 통해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실제로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공연을 하고 수학여행 때에도 공연해 상을 받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방시혁 대표는 공부에 집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음악으로 밥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2.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 2등을 놓쳐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인사이트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학창시절 방시혁 대표는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이래 전교 1, 2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을 만큼 머리가 비상했다.


학교에서 당시 최고 인기학과였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추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방시혁 대표는 음악을 한다고 했고 이를 들은 할아버지는 결사 반대했다.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데 굳이 음악을 해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반대에 방시혁 대표는 공부에 매진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3. 서울대학교 법학과 들어가기에는 점수가 모자라서 대신 미학과에 들어갔다


인사이트서울대 졸업식 축사 나선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1972년생인 방시혁 대표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했다. 방시혁 대표는 사실 법학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가기에는 점수가 모자랐던 것. 재수해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만큼은 죽어도 하기 싫어 미학과를 택했다고 한다.


방시혁 대표는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뒤 박진영이 수장으로 있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수석작곡가로 일했다.


4.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제6회 유재하 가요제'에 나가서 동상을 수상했다


인사이트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방시혁 대표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6회 유재하 가요제'에 나가 동상을 받았다. 제대로 일 낸 것이다.


방시혁 대표는 대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박진영 당시 JYP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프로듀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god '하늘색 풍선', 박지윤 '난 사랑에 빠졌죠', 비 '나쁜 남자' 등 히트곡을 잇따라 작곡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5. 방시혁이 작곡한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은 박진영의 일침 덕에 탄생했다


인사이트(좌) 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 (우)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방시혁 대표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가 아니어도 함께 곡 작업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백지영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이다.


백지영의 인생곡으로 불리는 '총 맞은 것처럼'은 방시혁 대표가 한창 음악적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박진영이 툭 던진 일침 때문에 이 곡을 쓰게 됐다고 한다.


박진영의 일침 덕분에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방시혁 대표가 쓰고 백지영이 부른 '총 맞은 것처럼' 덕분에 백지영은 발라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6.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취임해 7인조 아이돌 방탄소년단을 데뷔시켰다


인사이트빅히트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수석 작곡가로 활동했던 방시혁 대표는 지난 2005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독립했다. 그리고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방시혁 대표는 이후 2010년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 멘토로 출연하며 '속정 깊은 독설가'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또 2013년 7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가요계에 데뷔시켰고, 5년 만에 이들을 세계 최고 아이돌로 성장시켰다.


7. 방시혁 대표는 사실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는 애칭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인사이트Facebook 'bangtan.official'


방시혁 대표는 자신을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수식어가 사실은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방시혁 대표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기 때문이다. 또 아티스트라는게 누군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는 애칭에 부담감을 느낀다고 한다.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는 애칭 덕분에 주변에서 자꾸 자신이 결혼한 걸로 알고 있다며 한 총각을 살려주는 셈치고 '아빠', '아버지'라는 표현을 안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 넷마블 이끌고 있는 방준혁 의장과 방시혁 대표는 친척 사이다


인사이트(좌) 사진제공 = 넷마블, (우)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는 넷마블 방준혁 의장과는 친적이다. 방준혁 의장이 방시혁 대표보다 4살 많은 형이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많이 다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전격적인 제휴를 맺은 것이다. 넷마블은 지난해 4월 2014억원을 투자,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지분 25.71%를 확보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2대 주주 방준혁 의장은 글로벌 아이돌로 거듭난 방탄소년단을 통해 넷마블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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