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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까스활명수' 팔아 독립운동 도운 '애국기업' 동화약품

동화약품의 창업주 민강 선생은 까스활명수를 팔아 독립운동을 도왔고 이후 회사를 인수한 윤창식 선생과 그의 아들 윤광열 명예회장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사이트은포 민강 선생(좌), 보당 윤창식 선생(우) / 사진 제공 = 동화약품


독립운동 돕다 두 번이나 옥고 치른 동화약품 창업주 


[인사이트] 김유진 기자 = 유관순 열사가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던 3월 1일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총칼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치는 이들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애국 기업들도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동화약품이다.


인사이트YouTube '동화약품활명수'


국내 최초의 양약이자 국민 소화제인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은 독립운동에 자금을 댔던 대표적 민족기업이다.


동화약품의 창업주이자 활명수를 개발한 은포 민강 선생의 애국심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활명수로 벌어들인 돈을 임시정부 군자금에 보탰다.


일본의 감시로 돈을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중국에서 자금을 직접 마련할 수 있도록 활명수를 직접 보내기도 했다. 당시 활명수 한 병 가격은 50전으로 막걸리 한 말에 설렁탕 두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값이었다.


인사이트가송 윤광열 동화약품 명예회장 / 사진 제공 = 동화약품


독립운동 정신 이어간 동화약품 5대 사장 '윤창식 선생'


민강 선생은 동화약품 본사를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부로 삼아 독립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두 번이나 치렀다.


동화약품은 민강 선생뿐 아니라 2명의 독립운동가를 더 배출했다. 민강 선생에 이어 동화약품을 인수한 이가 바로 보당 윤창식 선생으로 그는 항일운동단체 신간회에서 활동했다.


윤창식 선생의 아들 가송 윤광열 명예회장도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중대장으로 활약하며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인사이트활명수 121주년 기념판 / 사진 제공 = 동화약품


독립운동가들을 먹여 살렸던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는 현재도 '생명을 살리는 물'로 통한다.


동화약품은 매년 '활명수 기념 판'을 선보이고 판매수익금을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와 우물 설치, 위생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