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로 시작해 '조' 단위 벌어들이는 기업 오너가 된 청년 창업가 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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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알리바바 창업가 마윈 / gettyimagesKorea, (우) 셀트리온 창업가 서정진 / 사진 제공 = 셀트리온


가난했지만 초일류 대기업 만든 창업가


[인사이트] 이다운 기자 = 과거에는 양반, 서민, 천민과 같이 계급이 있었다면 요즘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재벌 2세, 3세처럼 부모님이 돈이 많아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경우를 '금수저'라고 한다. 금수저의 성공은 배경과 돈이 받쳐주기 때문에 남들보다 쉬울 수 있다.


그에 반해 '흙수저'는 돈은커녕 빚을 물려받아 평범한 삶을 살기도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을 이끌고 있는 창업가들이 있다.


오직 자신의 노력과 사업 안목을 통해 오너가 된 한중 청년 창업가들의 '성공 비결'에 대해 알아보자.


1. 평범한 월급쟁이 출신 서정진이 만든 '셀트리온'


인사이트셀트리온 창업가 서정진 / 사진 = 셀트리온


지난 2002년 생겨난 '셀트리온'은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서정진 회장이 만든 글로벌 종합생명공학 기업이다.


국내 바이오 벤처계의 신화로 불리는 셀트리온 그룹은 시작한 지 16년 만에 시가총액 65조원의 대기업이 됐다.


'조' 단위의 매출을 벌어들이는 이 회사를 창업한 서정진 회장은 연탄가게 아들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산밑 동네에서 연탄배달을 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돈을 벌며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이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하다가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겨 대우그룹 컨설팅을 진행했다. 능력이 좋았던 그는 1991년부터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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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1997년 IMF로 인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어 2년간 백수로 지냈다.


그는 사업 아이템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제약·바이오가 무려 1천조가 넘는 규모를 갖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규모는 8조원에 불과하다는 점이 서 회장의 관심을 끌었다.


성장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그는 지난 2000년 자본금 5천만원을 가지고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만들었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직접 현장에서 공부하던 중 생명공학 회사 '제넨텍'이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셀트리온의 활로를 바꿔줄 '바이오시밀러'의 존재를 알았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셀트리온


서 회장은 지난 2007년 연구팀을 꾸려 항체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돌입했고 2009년 말 세계 최초로 항체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개발해냈다.


'램시마'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류마티스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궤양성 대장암 등을 치료한다.


현재 '램시마'는 유럽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고 지난해 미국에서의 매출은 약 1,321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195% 늘었다.


기분 좋은 성장을 하고 있는 서정진 회장은 도전을 가로막는 건 모두 핑계일 뿐이라며 자신의 사례를 거듭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흙수저니 뭐니 하며 수저 타령하는 게 제일 싫다"며 "부모의 직업이나 집안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가 성공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당부했다.


2. 중국의 시장을 뒤흔드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인사이트알리바바 창업가 마윈 / gettyimagesKorea


중국 전자상거래를 대표하는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대 부호로 꼽힌다.


지금은 중국에서 최고 부자지만 사실 그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는 저장성 항저우의 평탄(評彈·핑탄) 배우 부부의 아들이었다. 평탄은 우리나라 판소리와 같이 항저우 지방의 전통 공연을 말한다.


그가 태어날 당시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평탄 공연이 금지됐다. 마윈 집안은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졌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고 사범대학에 들어가 영어 교육을 전공해 강사로 일했다. 하지만 당시 수입은 한 달에 12달러(한화 약 1만 3,536원) 수준이었고 마윈은 1994년 창업에 나서게 된다.


중국 문서를 영어로 번역해주는 사무소를 열었으나 실패의 쓴맛을 봤다. 그러나 그는 출장차 미국을 오가면서 '알리바바'의 핵심인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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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1999년 친구 17명과 함께 전자상거래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알리바바'는 중국의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을 전 세계 기업이 구매할 수 있게 하면서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부유층을 겨냥한 온라인 백화점 '티몰' 등 다양한 회사를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중국에서 알리바바 그룹의 위세는 대단하다. 중국 국내 소포의 70%가 알리바바 관련 회사들을 통해 거래되는 물품이며 중국 내 온라인 거래의 80%가 알리바바 계열사들을 통해 이뤄진다.


알리바바 그룹의 현재 시가총액은 4,338억원, 2017년 포브스의 발표에 따르면 마윈의 재산은 약 43조원이다.


3. 병아리 10마리로 키운 대기업 하림


인사이트(좌)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 뉴스1, (우) 하림 전북 익산 공장 / 사진 제공 = 하림


하림식품으로 시작해 국내 최대 닭고기 기업으로 성장한 하림은 2017년 매출이 무려 7조원에 달한다.


하림을 창업한 김홍국 회장은 자수성가형 CEO다. 김 회장은 1957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는 11살에 외할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병아리 10마리를 닭으로 키워 팔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병아리를 키우던 경험을 살려 하림의 모체인 '황등농장'을 만들어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인사이트김홍국 하림 회장 / 사진 제공 = NS홈쇼핑


그러나 기쁨도 잠시 1982년 전염병이 돌면서 닭 값이 폭락했고 그는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축산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가공식품'에 주목했다.


김 회장은 지난 1986년 하림식품을 창업하고 1990년 하림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나갔다.


2001년 천하제일사료와 올품, 농수산홈쇼핑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몸집을 키웠다.


이후 선진, 팜스코, 주원산오리, 디디치킨, 멕시칸치킨, 선진, 그린바이텍, 팬오션 등을 인수합병하며 하림그룹을 계열사 58개, 자산규모 9조원대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4. 단칸방서 시작해 '알리바바' 위협하는 '핀둬둬' 회장 황정


인사이트황정 핀둬둬 회장 / (좌) Youtube 'Yicai第一财经', (우) Baidu


중국의 전자상거래 하면 떠오르는 '알리바바'를 위협하며 중국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지난 2015년 10월에 설립된 공동구매 애플리케이션 '핀둬둬(?多多)'다. 핀둬둬는 한화로 1천원대의 착한 가격과 무료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 회사를 설립한 황정은 흙수저 출신으로 올해 39세다. 그는 항저우 외곽 지역에서 공장 노동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공부만큼은 항상 1등을 차지했다.


특히 수학에 재능을 보이며 이공계 명문 '저장(浙江)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졸업 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당시 스타트업으로 급부상 중이던 구글에 입사했다.


인사이트'핀둬둬' 애플리케이션


취업 후 구글은 3년 만에 크게 성장했고 황 회장은 입사 시 받은 스톡옵션을 통해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이후 2007년 구글을 나와 7년간 창업을 시도하며 경험을 쌓은 뒤 '핀둬둬'를 열었다.


'핀둬둬'는 최적의 배송 경로와 기존 시장가 보다 20%가량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의 마음을 얻었다.


황 회장의 '핀둬둬'는 3년 만에 3억 명이 넘는 고객과 100만 개 상점을 확보하며 대박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26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238억 달러(한화 약 26조 8천억여원)의 기업가치를 달성했다.


5. '진품 흙수저' 방준혁 넷마블 의장


인사이트방준혁 넷마블 의장 / 뉴스1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넷마블게임즈의 의장 방준혁도 어려운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사도 여러 번 가야 했고 학원비 마련을 위해 초등학생 시절부터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여겼던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꿈꿨던 방 의장은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월급쟁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30대 초반 창업에 뛰어 들었고 몇번의 실패를 거쳐 2000년에 넷마블을 창업한다.


인사이트뉴스1


방 의장은 자본금 1억원으로 넷마블을 설립해 4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 100억원대의 회사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04년 그는 건강 악화로 CJ그룹에 800억원에 회사를 넘기며 떠났다. 하지만 그가 떠난 넷마블은 신작 게임 19개 모두 실패를 맛보게 되고 결국 2011년 방 의장이 다시 복귀한다.


그의 복귀와 함께 2015년 '모두의 마블'과 '세븐나이츠'로 매출 1조원 달성에 성공한다. 지난 2017년 넷마블은 매출 2조 4,248억원을 기록해 국내 1위 게임사로 정상에 올랐다.


방 의장은 스스로를 '진품 흙수저'라고 부르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결정짓지 말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인사이트 / 사진=박찬하 기자 chanha@사진=박찬하 기자 chan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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