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 정' 정세영 현대차 초대 사장이 회사 떠나는 날 눈물 펑펑 흘린 이유

인사이트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 사진 제공 = 현대산업개발


현대차 르네상스의 '기초'를 다진 인물은 따로 있다


[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국내 대표 완성차 기업이자 글로벌 5위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다.


위의 두 사람은 현대차가 지금의 위상을 갖게 하고, 또 한국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 하면 두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현대차 르네상스의 '기초'를 다진 인물은 따로 있다는 것을.


그 인물은 바로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일을 하던 정세영 명예회장은 '큰형님'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현대산업개발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한국 고유의 자동차를 만들고 또 산업을 발전시켜라"라는 특명을 받은 그는 이듬해인 1968년 미국 포드와 합작해 '코티나'를 조립·생산하더니 1974년 한국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 '포니'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국 자동차 역사를 새로 쓴 정세영 명예회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포니 정'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그는 포니를 발판 삼아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밑거름을 다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전용 공장을 만든 것은 물론 국내 최초로 자동차 종합 주행장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엑셀, 쏘나타, 그랜저, 엑센트 등을 개발·출시해 차량 라인업을 다양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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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세영 명예회장은 30여년간 자동차와 동고동락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동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의 등장으로 현대차와 '반강제'로 결별하게 된 것.


1998년 12월 현대그룹은 기아차를 인수한 후 자동차 부문 구조조정을 발표, 이사회 의장에 정세영 명예회장을 임명하고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회장을 현대차 회장에 임명했다.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 3월 2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세영 명예회장을 불러 현대차 경영권을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줄 것을 얘기했고, '큰형님'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차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인사이트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 사진 제공 = 현대그룹


참고로 정세영 명예회장의 회고록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에 따르면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은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고 말했다.


큰형님의 한 마디에 32년간 자식처럼 키워온 현대차를 포기한 정세영 명예회장은 1999년 3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몽구 회장의 현대산업개발 지분과 정세영-정몽규 부자의 현대차 지분을 맞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거목이 업계를 영원히 떠나게 된 것이다.


정세영 명예회장도 이 사실이 억울하고 또 슬펐는지 회장 이임익에서 회사 사가(회사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렸다. 이 모습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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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현대家의 큰어른 역할을 한 정세영 명예회장


그렇다고 해서 정세영 명예회장이 현대家와 등을 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2001년 3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2003년 8월)이 세상을 떠나자 집안의 큰어른 역할을 하며 현대家를 잘 추슬렀고, 또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선 조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 회고록에서는 "큰형님이 떠나라는 거북한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떠났어야 했고, 그러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큰형님의 속뜻을 진작 헤아리지 못한 내가 송구스러웠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정세영 회장이 세상을 떠난 날(2005년 5월), 현대家는 물론 재계가 "큰어른을 잃었다"면서 애도를 표했다.


인사이트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정세영 명예회장이 32년에 걸쳐 '기초'를 다져놨기에 '글로벌 현대차'가 가능했다.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도전 정신'과 정몽구 회장의 '카리스마'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세영 명예회장이 32년에 걸쳐 '기초'를 다져놨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포니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싼타페, 제네시스 브랜드는 없었을 것이고, 수출에 소극적이었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현대차를 넘어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정세영 명예회장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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