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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74"…44년 전 대한민국 식품·제약계에 벌어진 일 6가지

앞다퉈 다양한 제품 개발에 주력했던 식품·제약업계의 1974년 상품들이 모두 장수제품이 되어 사랑받고 있다.

인사이트Youtube 'ad CoCo', '광고고전'


식품·제약의 황금기였던 격동의 1974년


[인사이트] 심채윤 기자 = 누리꾼들 사이에서 tvN '응답하라' 다음 시리즈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해는 1974년이다.


1974년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새마을운동'으로 경제 부흥을 꾀한 1970년대는 나라 전체에 커다란 성장 욕구가 자리했다.


인사이트tvN '응답하라 1988'


수도권 전철 개통, 자유언론실천선언 투쟁과 한국 대중가요의 명곡이 탄생한 것도 1974년. 이처럼 당시 한국 역사를 바꾸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뭐든 도전할 수 있는 성장 초기인 덕에 식품과 제약업계도 기존에 선보이지 못한 다양한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다음에 소개할 제품은 모두 앞다투어 히트 상품을 출시해 식품과 제약업계의 황금기로 알려진 1974년에 탄생했다. 


1. 오리온 '초코파이'


인사이트Youtube '오리온초코파이'


1970년대 식품업계 과자는 뻥튀기나 튀겨내는 단순한 형태가 전부였다. 이에 오리온은 마시멜로, 파이, 초콜릿을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도매 상인이 직접 공장에서 물건을 떼서 소매상에게 넘기는 그 당시 방식에서도 출시 원년에만 2000만 개가 넘는 놀라운 판매량을 보였다.


초코파이가 출고되는 날이면 새벽부터 도매 상인이 오리온(당시 동양제과) 공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는 후문.


2. 빙그레 '투게더'


인사이트Youtube 'ad CoCo'


대한민국의 아이스크림은 1970년대 전과 후로 나뉜다. 그전에 식용색소를 넣은 '아이스께끼'로만 알고 있었던 아이스크림의 판도는 1974년을 기준으로 바뀌게 됐다.


정통 아이스크림은 일류호텔과 같은 최고급 식당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그때 그시절, 빙그레는 국내 첫 정통 아이스크림으로 달곰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투게더를 출시했다.


'투게더'는 생우유를 원료로 사용하며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으로 등장한 혁신적 제품이었다. 설비 자동화가 어려웠던 시기, 아이스크림 재료를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담았다는 일화도 있다. 


'께끼'의 60배가 넘어가는 가격에도 인기를 얻으며 아직도 대표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남아있다.


3. 동서식품 '프리마'


인사이트Youtube '광고고전'


동서식품 프리마도 액상크림만 존재하던 1974년 파우더 타입으로 출시되며 업계를 뒤흔들었다.


1960년대 이후 번진 '다방 문화'가 몰고 온 국내 커피 바람이 '프리마'의 출시에 한몫 했다. 한국인 입맛에는 쓴 커피가 고소한 분말크림과 섞이면서 국민 기호품으로 올라선 것.


'프리마'를 통해 동서식품이 커피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을 정도. 달달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더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프리마는 필수 식품이었다.


현재는 밀크티, 버블티뿐 아니라 식사 준비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되며 국내를 포함 동남아시아·러시아·중앙아시아 20여 개국에 '프리마 로드'를 개척할 정도가 됐다.


4. 해태제과 '누가바'


인사이트Youtube '광고고전'


해태제과의 누가바도 74년생이다. 국내 최초로 누가초코를 제품 겉면에 코팅하면서 출시하자마자 인기가 폭발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누가초코 코팅을 먼저 먹고 바닐라 크림을 먹는 '누가바 먹는 방법'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꾸준한 인기를 얻자 타 제과업체에서 누가바를 비슷하게 따라하는 표절 상품이 나타나는 등, 해태제과의 간판 상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5. 광동제약 '우황청심원'


인사이트Youtube 'Kwangdong'


우황청심원의 근간은 '동의보감'에서부터 시작한다. 외국 사신들이 오면 앞다투어 구하려 했던 조선의 명물이 우황청심원이었다.


동의보감 '풍' 항목에 수록된 이래 궁궐을 비롯해 널리 사용하던 우황청심원은 그 효능이 입증되면서 조선 왕실이 친교를 위해 중국에 선물할만큼 귀한 약품이었다.


이에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주는 기존에 출시되고 있는 제품보다 효능이 뛰어난 우황청심원을 개발해 광동제약의 대표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결심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폭발적인 호응과 함께 지금도 우황청심원, 하면 떠오르는 광동청심원 제품의 디자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6. 대웅제약 '우루사'


인사이트Youtube '광동제약'


1960년대는 첨단 시설 구축과 기술 발달로 제약산업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의약품 비중이 점차 증가하던 시기였다.


이 발전을 기반으로 1961년 우루사 알약이 출시됐지만, 쓴맛이 강하고 삼키기가 불편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우루사를 연질캡슐이 등장한 것은 1974년. 기회의 해에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이 연구진들과 함께 수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성공한 것.


차별화된 제형을 선보이며 1978년에는 전체 의약품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