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미국생활 버리고 '독립운동' 뛰어든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인사이트유일한 박사 / 사진 제공 = 유한양행


무장독립단체 만들고 군사 훈련까지 참여


[인사이트] 김유진 기자 = 잘 나가던 기업인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일제시대에 무장독립단체를 세우고 투쟁에 나섰던 기업가가 있다.


바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출신 기업인이자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다.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가 독립운동에 필요한 민족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유 박사는 만 9살이 되던 1904년 미국으로 떠나 1919년에 미국 미시간 대학교를 졸업하는 등 남부럽지 않은 유학 생활을 보냈다.


인사이트유일한 박사 / 사진 제공 = 유한양행


대학을 졸업한 뒤 1922년 '라초이식품회사'를 창업하며 유 박사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간도를 들리게 된 유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과 마주하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결국 유 박사는 당시 운영하던 회사를 과감하게 매각하고 재산을 정리한 뒤 귀국을 결정한다.


위기에 처한 조국과 일본의 핍박을 받으며 독립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동포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인사이트 / 사진=임경호 기자 kyungho@사진=임경호 기자 kyungho@


정부, 1955년에 건국훈장·독립훈장 수여


유 박사는 귀국하자마자 1926년에 유한양행을 설립한다.


1942년에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돌아가 재미 한인들로 구성된 무장독립운동단체 맹호군 창설을 주도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유 박사는 미국 전략정보처(OSS)와 한국광복군 국내 침공작전인 '냅코(NAPKO) 작전' 핵심 요원으로도 참여해 고된 군사 훈련까지 견뎌냈다.


인사이트유일한 박사 / 사진 제공 = 유한양행


이러한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박사는 1955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과 독립훈장을 받았고 1996년에는 6월의 독립운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헌혈, 연탄 나눔, 학술 연구 지원, 국가유공자 지원에 앞장서는 등 착한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창립 92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이 100년을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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