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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박용성이 할아버지가 세운 OB맥주 '카스' 외국회사에 팔게 된 '결정적 사건'

두산그룹 창업주이자 할아버지가 세워 두산의 뿌리 기업이었던 OB맥주가 외국 회사로 매각된 이야기가 두산 박용성의 결단을 보여준다.

인사이트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 / 사진 = 인사이트, 뉴스1


OB맥주의 매각에 얽힌 일련의 상황들


[인사이트] 심채윤 기자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스' OB맥주는 사실 두산의 것이었다. 그러나 2001년 두산이 미래성장 엔진으로 중공업을 택하면서 OB맥주의 대주주가 바뀌었다.


OB맥주의 시작은 박승직 두산 창업주가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하면서다. 그의 아들 박두병이 동양 맥주로 발전시키며 OB맥주의 기틀을 쌓았다.


손자 박용성 전 회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뒤를 이어 OB맥주를 이끌게 됐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그룹의 구조개편을 진행하며 OB맥주를 포함, 소비재 산업을 매각했다.


커다란 변화였으나 성공적으로 이룬 덕에, 지금 두산그룹은 외환위기 IMF라는 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돌파한 구조조정 성공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인사이트Youtube 'premierob'


두산의 OB맥주 매각은 성공적 구조조정의 사례


한국 재계의 건전성을 언급할 때 외국투자자 사이에서도 두산그룹이 주 성공사례로 언급될 정도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운 OB맥주를 팔아야겠느냐는 비난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린 박 전 회장의 결정에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다.


바로 27년 전인 지난 1991년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다량의 페놀 원액이 대구·부산·마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켰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다.


1991년 3월 14일, 구미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연결된 파이프가 파열돼 30톤의 페놀 원액이 옥계천으로 흘렀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뉴스1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불거진 두산 불매 운동


약 8시간가량의 누출로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조사 결과 수돗물 페놀 수치가 당시 대한민국 허용치인 0.005 ppm의 22배에 달하는 수치까지 이른 지역도 있었다.


또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1990년 10월부터 두산전자는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 폐수 325톤을 옥계천에 무단 방류하고 있었다.


당시 분노한 시민들은 두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OB맥주를 낙동강에 뿌리는 퍼포먼스까지 생겨났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두산전자는 환경처가 20일 만에 조업 재개를 허용하자마자 사고가 재발했다.


같은해 4월 22일 페놀 탱크 송출 파이프 이음새가 또 파열되면서 페놀 원액 2톤이 다시 유출된 것.


이 사건으로 당시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이 물러나고 대구시민들은 두산 측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 170억 100만 원(1만 3,475건)의 배상을 청구했다.


두산의 이미지는 급격히 하락했다. 특히 시민들이 불매 운동을 시작한 소비재의 타격이 컸다.


위기가 계속 이어져서일까. 창립 100년을 맞은 1996년, 수익구조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두산그룹의 상황에 박용성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인사이트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뉴스1


기업이 휘청거리자 박 회장은 경영진단부터 하기로 했다. 그는 외국의 전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에 맡긴 컨설팅 보고서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내용은 '현금 흐름상 몇 개월 내에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것. 주력 기업인 OB맥주까지 파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결과였다.


두산의 뿌리 기업인 OB맥주지만, 박 회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만에 두산이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정을 내렸다.


대대적인 인수 합병과 함께 OB맥주 지분 50%를 매각하고 코닥, 네슬레 등도 처분했다. 확보한 현금은 빚을 먼저 갚는 데 쓰였다.


인사이트(좌) Youtube 'logneun', (우) 뉴스1


대대적인 구조조정 통한 소비재 산업 매각


잠시 한숨 돌리자마자 닥친 외환위기는 30대 그룹 중 18개가 쓰러질 정도였지만, OB맥주 등을 매각한 덕에 두산은 큰 타격 없이 지금까지 그룹을 이끌어왔다.


이후 박 회장은 대우종합기계, 한국 중공업 등을 인수하면서 주력사업으로 두산중공업을 편성했다.


최근 박용성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OB맥주 매각은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단으로 손꼽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명절에는 손자·손녀들까지 데리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산소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산소에 가서도 OB맥주를 팔아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적은 없다. '3대, 4대째 그룹을 잘 성장시키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다"고.


인사이트사진=고대현 기자 dae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