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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망'해가던 회사 '메로나'로 한방에 살린 김호연 빙그레 회장

전연령대의 입맛을 사로잡은 멜론맛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휘청거렸던 빙그레를 다시 일으켜준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이트김호연 빙그레 회장 / 사진 제공 = 빙그레 (우) Instagram 'jeanfree1'


[인사이트] 윤혜경 기자 ="올 때 메로나~"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는 유행어 중 하나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올 때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아오라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동생에게 보낼 메시지를 실수로 택배 아저씨에게 보냈는데, 택배 아저씨가 방문할 때 진짜 메로나를 사 왔다는 한 누리꾼의 사연이 온라인상에 올라오면서 유행이 됐다.


그만큼 빙그레의 아이스크림 바 '메로나'가 소비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연령대의 입맛을 사로잡은 멜론맛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휘청거렸던 빙그레를 다시 일으켜준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이트빙그레 홈페이지 


'다이너마이트 킴'으로 불리는 한화 김종희 회장 손에 들어온 빙그레고급 아이스크림 투게더, 바나나맛우유 출시하며 돌풍 일으켜


빙그레의 역사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화 창업주 고(故) 김종희 회장이 부도 위기에 몰린 낙농업체 대일유업(빙그레의 전신)을 인수, 한국화약(한화의 전신)으로 편입하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김종희 회장은 1973년 거듭된 적자로 위기에 몰린 대일유업을 떠안은 후 1974년 1월에 국내 최초로 생우유를 넣은 고급 아이스크림 '투게더'를, 같은 해 6월에는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를 선보였다.


당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급호텔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고급 아이스크림을 동네 슈퍼에서 만날 수 있게 됐으며, 귀한 과일로 불리는 '바나나'의 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사진 = 인사이트


'요플레'까지 출시하며 '국민 간식' 계보 이어가연이은 성공에 사업다각화 추진하던 빙그레, '부실기업'으로 전락


대일유업이 출시한 제품들은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다이너마이트 킴'으로 불린 김종희 회장은 1981년 '요플레'를 출시하며 발효유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요플레로 '국민 간식'의 계보를 이어가던 중 김종희 회장이 1981년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이후 대일유업은 1982년 '빙그레'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리고 1985년에 라면사업과 베이커리 사업까지 손을 뻗쳤다.


지나친 사업다각화 때문에 빙그레는 '부실기업'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이 과정에서 빙그레는 1992년 한화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김종희 회장의 차남인 김호연 한양유통 대표가 빙그레의 최대주주가 됐다.


인사이트(좌) 김호연 빙그레 회장 / 사진 제공 = 빙그레 (우) 빙그레 본사 / 사진 제공 = 빙그레 


한화그룹 계열분리되면서 빙그레 떠맡은 김호연 회장메가 히트 상품 '메로나'출시로 한 방에 기사회생


빙그레 신임 회장이 된 김호연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했다. 김 회장이 취임하던 해인 1992년 빙그레의 부채비율이 4183%에 달했기 때문이다.


재정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의 스테디셀러 메로나가 출시됐다.


지금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메로나는 데뷔 때부터 대중의 관심을 샀다.


'바나나'처럼 귀족 과일로 불리는 '멜론'을 소재로 한 데다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메로나는 출시 첫 해에만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메로나가 '효자' 노릇을 하며 회사를 일으켜 세운 발판이 된 셈이다.


인사이트빙그레


출시 첫 해에만 200억원 매출 올린 '메로나'효자 상품들 덕에 비로소 활짝 웃는 빙그레


메로나를 비롯한 효자 상품들 덕에 빙그레의 상황은 전보다 나아졌다.


김호연 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 비주력 사업을 철수했다. 골머리를 앓게 만든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이다.


이와 동시에 김 회장은 증자와 투자유치에 적극 나섰다. 덕분에 빙그레의 부채비율은 1992년 4183%에서 1998년 360%까지 급감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흘렀다. 빙그레의 지난해 매출은 8,575억원, 영업이익 347억원 달한다. 괄목할 만한 성과다. 부실기업이었던 빙그레가 어느덧 견실한 기업이 된 것이다.


메로나를 비롯해 바나나맛 우유, 투게더 등 회사가 힘들 때마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준 '효자 상품' 덕분에 빙그레는 사명처럼 활짝 웃을 수 있게 됐다.


인사이트사진 제공 = 빙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