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폭언·폭행 당하면서도 환자 목숨을 살려야 하는 응급실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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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불이 꺼지고 모두가 잠든 어두운 중환자실에 한 남성이 침대에 누운 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벌써 12시간째다. 그는 불과 하루 전 심정지로 생사를 오가던 이 환자의 목숨을 살렸다.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 또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에 그는 휴식 대신 환자 지키기를 선택했다.


끼니는 빵 쪼가리와 우유 한 컵으로 대충 해결했다. 입안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으면서도 그의 눈은 환자의 그래프로 향해있다.


누군가의 생을 위해 이토록 애쓰는 한 사람, 그는 응급실 의사다. 


그러나 요즘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응급실 의사가 도리어 환자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인사이트대한의사협회 


최근 구미의 한 병원에서 응급실 의사가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휘두른 철제 트레이에 맞아 동맥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20대 남성은 술자리서 친구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부상을 입었고 해당 의사에게 치료를 받은 상황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이에게 폭행이라니. 피해 의사는 뇌진탕과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가해자는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이 참작돼 훈방 조치됐다.


불 꺼진 중환자실을 지키는 누군가처럼, 생명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환자를 위해 살고 있는 의사들이지만 이들은 각종 폭행과 폭언에 여과 없이 노출돼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진 폭행 및 협박 사례는 2016년 582건에서 지난해 893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그중 68%가 주취 상황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징역형을 받은 가해자는 단 2명에 불과하다. 벌금형도 25명뿐이다. 처벌 자체를 받지 않은 가해자는 214명에 달한다.


인사이트뉴스1


상황이 이런데도 의료진을 보호할 장치는 거의 전무하다. 현행법상 폭행 등으로 의료진의 진료 행위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은 물린다.


문제는 여기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이 조항과 의사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근무한다는 점을 악용해 협박을 일삼는다.


지난 7월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의료진 폭행사건에서도 가해자는 경찰에 연행되는 순간까지 의사에게 "칼 들고 와서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보복이 두려운 의료진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해자와 합의를 보는 게 현실이다.


환자의 목숨이 오가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이제 의사는 자신의 안위까지 걱정하며 응급실을 지켜야하는 꼴이 됐다.


인사이트EBS '메디컬다큐-7요일'


선진국의 경우, 안전요원 배치가 의무다. 응급실 출입 전 금속탐지기를 통과해 흉기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위기 상황에서 경찰에 알릴 수 있는 응급버튼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은 응급실 안전요원에게 공권력에 준하는 권력을 주고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주저하지 않는다. 음주를 했다면 감경이 아니라 '가중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만큼 의료진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곧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이들은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장에서 유명무실해진 법체계를 바꿔야한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주취상태의 폭력에 대해선 더욱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자신이 휘두른 주먹이 의료진뿐아니라 응급실 전체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사실을 명백히 일깨워줘야 고질적인 응급실 폭행에 제동을 가할 수 있다.


인사이트EBS '메디컬다큐-7요일'


'자신을 치료해 주는데도 폭행을 일삼는 환자를 내가 살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의사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러한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내리는 결론은 하나다.


"살린다"


의사는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자이기에 매를 맞으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불 꺼진 중환자실의 그 누군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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