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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죽은 딸 위해 11년간 싸워 삼성전자의 '백기' 얻어낸 아빠의 눈물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는 딸이 세상을 떠난지 11년 만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종지부를 찍게 되자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인사이트故 황유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 사진제공 = 반올림


[인사이트] 장영훈 기자 = 꼬박 11년이나 걸렸다. 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아버지의 머리는 어느새 백발이 되어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는 딸이 세상을 떠난지 11년 만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종지부를 찍게 되자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987년에 태어난 故 황유미 씨는 21살이던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생산라인에서 반도체 세정 작업을 했다.


故 황유미 씨가 기흥공장에서 일한 지 1년 8개월이 됐을 무렵인 2005년 6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년 뒤인 2007년 꽃다운 나이인 23살에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자신이 다루는 화학 물질이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방진복 하나 입고 일하다 맞이한 가슴 아픈 죽음이었다.


인사이트2년 전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이던 아버지 황상기 씨 당시 모습 / 인사이트 


故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논쟁이 불거졌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을 돕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민단체의 이름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 故 황유미 씨의 사건은 반도체 공장의 산업 재해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됐다.


'반올림' 집계에 따르면 삼성 계열사에서만 무려 118명이 직업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는 '반올림'이 지난 10여년간 확인한 숫자다.


삼성 계열사 전체 직업병 피해자는 320명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와 사망자 대부분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나왔다.


어디까지나 이는 '반올림'이 확인한 숫자일 뿐,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 '반올림'은 지금까지 투병 중인 노동자와 유가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인사이트2년 전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이던 아버지 황상기 씨 당시 모습 / 인사이트


하지만 이들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삼성전자 측은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회유하는 등 직업병 문제를 덮으려고만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5월 故 황유미 씨를 포함한 5명 등에 대한 산재 신청 사건에 대해 불승인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은 2011년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등 유가족 3명과 투병 중인 직원 2명이 낸 소송에서 故 황유미씨 등 2명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


2014년 8월 서울고법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故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7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결국 2014년 11월 '반올림'과 가족대책위는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문제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나섰다.


인사이트지난해 특검 사무실 찾은 황상기 씨 모습 / 뉴스1


조정위원회가 8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2015년 7월 1000억원 규모의 공익재단 설립 등이 들어있는 조정 권고안을 마련했다. 독립된 공익법인을 세워 피해자 보상과 재발 방지 역할을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공익재단을 만들 수 없다며 권고안을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삼성전자는 오히려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렸다.


반올림은 이에 반발해 2015년 10월 7일부터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천막 1000일여간 천막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조정위원회는 올해 초 삼성전자와 '반올림'으로부터 '합의 의사'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부 검토를 거쳐 지난 18일 '2차 조정을 위한 공개 제안서'를 양측에 각각 보냈다.


이번에 조정위원회는 양측에서 세부 합의안에 대한 의견을 받아 이를 조율하는 과거 방식이 아니라 조정위원장이 '중재안'을 내는 방안을 통보했다.


인사이트사진제공 = 삼성전자


조정위원회가 양측 의견을 종합해 강제중재안을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중재안 내용과 무관하게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올림' 역시 조정위원회 제안에 동의한다는 뜻을 전달하면서 11년만에 삼성 반도체 분쟁 최종 타결을 눈앞에 두게 됐다.


조정위원회와 삼성전자, '반올림'은 오는 24일 중재 합의안에 서명을 할 계획이다. 조정위원회는 양측의 합의가 이뤄질 경우 9월 말에서 10월 초에 '반올림' 피해자 보상을 모두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과 관련해 2월 초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석방된 이후 삼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고민하면서 11년간 끌어왔던 삼성 반도체 분쟁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사이트인도 공장 준공식 참석차 출국하는 당시 이재용 부회장 모습 / 뉴스1


실제 삼성은 1938년 창사이래 80년간 고수해온 '무(無)노조 경영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 8천명을 직접 고용키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이번 합의가 故 황유미 씨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으로 11년간 이어져 온 양측의 분쟁을 완전히 마무리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한편 조정위원회 '중재안'의 큰 틀은 새로운 질병보상 방안과 반올림 피해자 보상 및 삼성전자의 사과,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 어느 정도 마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故 황유미 씨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지 11년 만이다.


그동안 외로운 싸움을 벌였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삼성 측에도 큰 잘못이 있고, 이를 관리하는 정부도 자기 역할을 못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