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자살을 목격한 날 기관사들은 모두 모여 '슬픈 회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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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장형인 기자 = 한 기관사가 열차 운전석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이날 기관사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을 겪었다. 눈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열차로 뛰어든 여성을 본 것이다. 


지난 26일 오후 12시 40분. 서울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에서 30대 여성이 선로로 투신했다. 


기관사는 당시 급제동을 시도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여성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사건이 발생한 후 철도 동호회 카페 엔레일에는 이날 발생한 사상사고와 관련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에는 투신 사고의 또 다른 피해자인 '기관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목격한 그는 괴로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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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기관사들의 고통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4년 한 기관사는 투신 사고를 4번이나 경험했다고 한 매체에 고백했다. 


사고 때마다 회사와 진료 협약을 맺은 대학병원에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했지만 치료는 충분치 않았다.


또한, 이 기관사는 힘들다고 얘기하면 회사에 못 다닐 것 같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먹고살려면 대충 넘어가는 게 좋았다. 사고가 거듭될수록 대인기피증은 심해졌다. 훼손된 시신이 툭하면 꿈에 나타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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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기관사는 사상사고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등 각종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다.


문제는 스트레스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기관사들을 보호하는 법규와 해결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정신 장애를 앓는 기관사에게 의무적으로 치료를 제공하진 않는다.


우울증 및 공황장애를 앓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지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총 9차례 발생했지만 정신과 치료 의무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을 의무화하면 원치 않는 직원의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는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잦은 기관사에게 의무적인 정신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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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사상사고를 접한 기관사에게 정신과 상담을 100% 의무화했다. 


해외 논문에 따르면 의무화 상담을 받은 기관사의 상황이 개선됐다.


국내 전문가들은 기관사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 의무화 같은 '시스템'을 성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컴컴한 터널에서 근무하는 조건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한다"며 "더구나 승강장에서 자살하는 사람을 치는 경험까지 겪는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야기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코레일은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 2013년부터 정신과전문의를 비롯한 상담전문가 3명을 배치해 자체 힐링센터를 운영 중이다. 또한, 5일간의 위로 휴가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관사들에 비해 상담 인력이 부족하며, 휴가 기관이 턱없이 짧다는 등 기관사들의 사후 관리에 대한 추가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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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기관사들 사이에서는 '슬픈 회식' 관행이 있다고 한다. 


투신사고가 발생하면 동료들끼리 모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다.


집에 가봐야 잠을 이룰 수 없어 차라리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먹어 사고 기억을 잊기 위함이다.


오류동역에서 투신자살을 목격한 기관사도 기억을 잊으려 동료들과 술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게 술이 아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 치료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기치 않은 사고와 마주쳐야만 하는 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몇 차례 겪고 나면 오히려 괜찮아진다"고 자조 섞인 말을 건넨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 여론이 모여 기관사 정신 치료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절한 제도가 마련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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