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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주영 회장도 단골이었다는 국내 최초 여성 이발사 이덕훈 할머니 이야기

1958년 이발사 자격증을 딴 국내 최초 여성 이발사이자 현직 최고령 이발사인 이덕훈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사이트Facebook 'ahopsi.kr'


[인사이트] 이하린 기자 = "오, 저기 여자가 있다, 여자가 있다"


이발소에서 여자가 가위를 들면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던 시절, 그 속에서 묵묵히 손님들의 머리를 자르는 한 처녀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이발사이자 지금은 현역 최고령 이발사가 된 이덕훈(82)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최전방 부대에 이발 담당관으로 차출된 아버지를 따라 7살에 북만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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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서울로 돌아오니 남은 것은 지독한 가난과 밑으로 줄줄이 달린 동생들뿐이었다. 


당시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부잣집에 일찍이 시집가거나 식모살이를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덕훈 할머니는 달랐다. 


그는 19살에 아버지의 일터에서 머리칼을 치우면서 일을 돕기 시작하다가 1958년 이발사 시험에 응시했다. 


온통 한자로 된 위생학 교재를 한 자 한 자 옥편을 찾아가며 독파한 끝에, 시험 통과자 31명 중 유일한 여성 합격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때부터 60년간 이어온 '워커홀릭' 이덕훈 할머니의 역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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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은 나가서 돈을 벌고 8시간은 집에서 일을 하는 고된 생활의 연속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다. 앞머리가 눈에 안 찔리게, 귀 뒷머리가 귀에 안 닿게 사람들의 '위생'을 챙겨주는 자신의 일이 좋았다. 


오랜 세월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수없이 많은 단골손님이 할머니를 거쳐갔다. 


그중에는 故 정주영 회장도 있었다. 정 회장이 남산 외인아파트 살던 시절 할머니는 근처 이발소에서 일을 했는데, 종종 정 회장의 집에 가서 이발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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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훈 할머니는 성실하고 정정하다. 


50년 넘은 가위도 매일 그의 손에 붙어 있으니 녹이 슬지 않는다. 


손님이 오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맞이하고, 하얀 가운을 두른 채 비장하게 이발을 시작한다. 


"모든 만물을 관장하는 두뇌를 보호하는 게 머리카락인데, 그 머리카락을 다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기술 아니겠냐"는 말에서 근거 있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의자 두 개짜리 이발소 '새 이용원'에서 할머니는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기술'을 뽐내며 행복한 가위질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