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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내놓고 '독립운동 자금' 지원하면서도 고성장해 121주년 맞은 '동화약품'

굴욕적인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독립운동가들을 몰래 후원한 '애국 기업'들이 보란 듯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인사이트좌측은 까스활명수, 우측은 창업자 민강 사장 / 사진 제공 = 동화약품


[인사이트] 권길여 기자 = 독립운동한다고 절대 망하지 않는다.


굴욕적인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독립운동가들을 몰래 후원한 '애국 기업'들이 보란 듯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


우리에게 '부채표 까스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동화약품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했음에도 빠른 속도로 성장해 올해로 '창업 121주년'을 맞았다.


인사이트동화약품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 창업자 민강 사장은 1920년대에 까스활명수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댔다.


그는 일제의 감시로 돈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는 '생명을 살리는 물' 대접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던 활명수를 중국으로 보내,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팔아 쓰게 했다.


또 민강 사장은 임시정부와의 연락책을 맡으면서, 자신의 약방을 서울 연통부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동화약품 본사가 있는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9길 14가 실제 서울 연통부가 있던 곳이다.


안타깝게도 민강 사장은 임시정부에 발송할 비밀문서를 목판에 새기다 발각되는 등 독립운동 연루 사실이 드러나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인사이트좌측은 윤광열 명예회장, 우측은 윤창식 사장 / 사진 제공 = 동화약품


그는 혹독한 옥고 생활 때문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1931년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나,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더 대단한 것은 민강 사장 사망 이후 그의 정신이 후대 동화약방 경영자들에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5대 사장으로 동화약방을 인수한 보당 윤창식 선생은 민족 경제 자립을 목표로 하는 '조선산직장려계' 총무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민족주의자다.


그는 빈민 구제 활동을 하는 '보린회', 민족 운동을 표방한 단체 '신간회' 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대 사장인 윤광열 명예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본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탈출해 상하이 주호지대 광복군 중대장을 맡았다.


인사이트동화약품


권길여 기자 gilyeo@insight.co.kr